가을 초입에 과일 상자 한가득 들어온 감을 보며, 며칠만 두면 물러져 버리겠다는 생각에 급히 칼을 집어 든 적이 있습니다. 생으로만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감식초를 처음 담가 보게 되었는데요. 시간이 꽤 걸리고 중간중간 신경 써야 할 점도 많았지만, 몇 달 뒤 병을 열었을 때 은은한 향과 깊은 신맛이 올라오던 순간만큼은 정말 뿌듯했습니다.
감식초에 어울리는 감과 기본 준비
감식초는 잘 익은 감을 발효시켜 만드는 천연 식초입니다. 단감이든 홍시든 사용할 수 있지만, 당도가 충분히 올라온 감일수록 발효가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향도 풍부해집니다. 덜 익은 감은 알코올 발효가 약해 실패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완전히 숙성된 감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집에서 감식초를 만들 때 필요한 기본 준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잘 익은 감: 처음이라면 2~3kg 정도면 충분합니다.
- 설탕(선택 사항): 감 무게의 10~20% 내에서 사용합니다. 홍시처럼 당도가 높은 감이라면 생략해도 됩니다.
- 종초(초모 또는 시판 천연식초 약간, 선택 사항): 초산균을 빨리 자리 잡게 해줍니다.
- 소독된 유리병 또는 항아리: 감을 넣었을 때 70~80% 정도만 차는 크기가 적당합니다.
- 깨끗한 면포나 한지, 고무줄: 병 입구를 덮어 공기는 통하게 하되 이물질은 막기 위해 사용합니다.
- 칼, 도마, 큰 볼, 채반: 감 손질과 세척 후 물기 제거에 필요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와 도구의 위생 관리입니다. 발효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처음 단계에서 들어간 잡균은 나중에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감 손질과 용기 소독 방법
감식초를 담그기 전, 용기와 감을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전체 과정의 절반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중요합니다.
유리병이나 항아리는 뜨거운 물을 부어 소독하거나, 끓는 물에 잠깐 담갔다가 꺼낸 뒤 완전히 건조시킵니다. 물기가 남아 있으면 곰팡이나 잡균이 자라기 쉬우므로, 입구까지 충분히 말려야 합니다. 알코올 소독제를 사용할 경우에는 식품용 에탄올을 사용하고, 남은 알코올이 자연스럽게 날아가도록 시간을 두고 말려줍니다.
감은 흐르는 물에 꼼꼼히 씻어 흙과 이물질을 제거한 뒤, 채반에 펼쳐 직사광선을 피한 곳에서 충분히 말립니다. 물기를 빨리 없애고 싶다면 키친타월로 겉을 살살 눌러 닦아주어도 좋습니다.
꼭지 부분과 상한 부분을 도려내고, 감은 껍질째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감 껍질에는 자연 효모와 향 성분이 많이 남아 있어 발효가 더 잘 진행됩니다. 4등분하거나 깍둑썰기해서 씨를 빼고, 너무 잘게 자르지는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적당한 크기가 발효 시 질감과 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차 발효: 감술 만들기 과정
감식초의 첫 단계는 감을 활용해 알코올 발효를 거치는 과정입니다. 이 단계에서 충분한 알코올이 생성되어야 다음 단계인 초산 발효가 안정적으로 진행됩니다.
소독된 용기에 손질한 감을 넣고, 용기의 70~80% 정도만 채웁니다. 발효가 진행되면서 기포가 생기고 부피가 살짝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윗부분에 여유 공간을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감의 단맛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감 무게의 10~20% 정도 설탕을 넣어줍니다. 감과 설탕을 켜켜이 쌓아도 되고, 감을 다 넣은 뒤 위에서 뿌려도 괜찮습니다. 너무 많은 설탕은 지나치게 끈적이거나 발효 향이 거칠어질 수 있으므로, 최소량부터 시작해보는 편이 좋습니다.
면포나 한지로 병 입구를 덮고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줍니다. 이때 뚜껑을 완전히 닫아 밀폐하면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지 못해 발효가 잘 되지 않거나, 내부 압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공기는 드나들되, 먼지나 벌레는 들어가지 않도록 가볍게 덮어주는 방식이 가장 안전합니다.
용기는 직사광선을 피한 서늘한 곳, 보통 20~25도 정도 되는 장소에 두면 무리가 없습니다. 처음 1주일 정도는 하루에 한두 번 정도 나무주걱이나 소독한 손으로 아래위로 저어줍니다. 감이 위로 떠오르면서 공기와 직접 맞닿는 시간이 길어지면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데, 이 과정을 통해 골고루 잠기고 발효가 잘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감에서 즙이 우러나와 액체가 늘어나고, 작은 기포가 보이거나 은은한 술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보통 1~3주가 지나면 기포가 줄어들고 감이 아래로 가라앉으며, 전체적으로 술 냄새가 진해집니다. 이때가 1차 발효가 거의 마무리된 시점입니다.
건더기 분리와 감술 옮기기
알코올 발효가 어느 정도 끝나면, 감 건더기와 액체를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단계에서 너무 급하게 누르거나 덜 걸러내면 나중에 맛이 탁해질 수 있어, 조금만 더 신경 쓰면 결과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깨끗한 채반 위에 면포를 깔고, 발효된 감을 천천히 부어 건더기와 액체를 나눕니다. 감술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액체가 바로 이후 식초로 변할 재료입니다. 건더기는 손으로 살짝 눌러 마지막 즙까지 짜서 모아주되, 너무 강하게 짜서 과육이 많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걸러낸 액체는 다시 소독된 유리병이나 항아리에 옮겨 담습니다. 이때도 용기는 미리 깨끗이 소독해 완전히 말려둔 상태여야 합니다.
2차 발효: 식초로 익어가는 시간
이제 감술이 초산 발효를 거쳐 진짜 감식초로 변하는 단계입니다. 이 과정은 1차 발효보다 시간이 더 길고, 온도와 공기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걸러낸 감술에 초모나 천연 식초를 조금 넣어주면 초산균이 빨리 자리 잡으면서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양은 감술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3리터 기준으로 천연식초 100~200ml 정도면 충분합니다. 만약 종초가 없다면 넣지 않아도 되지만, 발효 속도가 느려질 수 있습니다.
용기 입구는 다시 면포나 한지로 덮어 고무줄로 고정합니다. 초산균은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공기와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2차 발효는 25~30도 전후의 약간 따뜻한 환경에서 잘 진행됩니다. 너무 낮으면 발효가 잘 안 되고, 너무 높으면 잡균이 번식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통풍이 되면서도 직사광선은 들어오지 않는 장소가 이상적입니다.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가 지나면 액체 표면에 얇고 투명한 막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막이 점차 두꺼워지고 젤리처럼 변하면 흔히 말하는 초모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때 술 냄새는 줄어들고, 새콤한 식초 향이 점점 강해집니다.
보통 1~3개월 정도 지나면 신맛이 충분히 올라오고 향도 안정됩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중간중간 깨끗한 숟가락으로 소량을 떠서 맛을 보며 신맛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너무 자주 젓거나 건드리면 표면의 초모가 자꾸 깨질 수 있으니, 맛보는 간격을 넉넉히 두는 편이 좋습니다.
초모 정리와 숙성, 보관 요령
원하는 만큼 신맛이 올라왔다고 느껴지면, 이제 식초를 정리하고 숙성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맛이 더 부드러워지고 향도 깊어집니다.
먼저 표면에 떠 있는 초모를 조심스럽게 건져냅니다. 깨끗한 유리병에 약간의 식초와 함께 보관해두면, 다음에 새로운 식초를 담글 때 종초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사용 계획이 없다면 과감히 버려도 괜찮습니다. 너무 오래 그대로 두면 식초 맛이 지나치게 강해지거나 향이 탁해질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면포나 고운 체로 한 번 더 걸러 찌꺼기를 제거한 뒤, 완전히 소독된 밀폐 용기에 담아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둡니다. 방 안의 서늘한 곳에 두어도 무방하지만, 온도 변화를 줄이고 싶다면 냉장 보관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만든 직후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3개월 이상 숙성시키면 모서리가 둥글어진 듯한 부드러운 신맛과 향이 살아납니다. 개인적으로는 반년 정도 지났을 때 향과 맛의 균형이 가장 좋게 느껴졌습니다.
곰팡이와 초막 구분, 실패를 줄이는 핵심 포인트
집에서 식초를 만들다 보면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곰팡이입니다. 직접 해보면 초막과 곰팡이를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모양을 미리 알고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초막(초모)은 투명하거나 약간 하얀색에 가까운 얇은 막으로, 표면이 비교적 매끈하고 젤리 같은 느낌으로 자랍니다.
- 곰팡이는 푸르거나 검은색, 회색 등을 띠며 솜털처럼 피어오르거나 얼룩덜룩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냄새 역시 텁텁하거나 불쾌한 경우가 많습니다.
곰팡이가 조금이라도 의심된다면 아깝더라도 통째로 버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식초의 산도가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안전해지긴 하지만, 초반에는 아직 산도가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상태라 오염 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줄이는 핵심은 다음 세 가지에 가깝습니다.
- 위생 관리: 손, 도마, 칼, 용기를 항상 깨끗이 유지하고, 가능하면 소독까지 해줍니다.
- 적정 온도: 1차 발효는 20~25도, 2차 발효는 25~30도 정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 공기와 밀폐의 균형: 발효 동안은 반드시 면포나 한지로 덮어 공기는 통하게 하되, 완전 밀폐는 피합니다.
집에서 만든 감식초 활용법
몇 달을 기다려 얻은 감식초는 생각보다 활용 범위가 넓습니다. 시판 식초와 달리 향이 부드럽고 단맛이 살짝 남아 있어, 요리에 넣었을 때 과한 자극 없이 풍미를 더해줍니다.
- 샐러드 드레싱: 올리브유, 소금, 후추와 함께 섞어 간단한 비네그레트 소스로 사용하면, 감 특유의 은은한 단향이 느껴집니다.
- 음료: 물이나 탄산수에 감식초를 소량 섞어 마시면 상큼한 음료처럼 즐길 수 있습니다. 위가 예민한 경우 너무 진하게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조림과 무침 요리: 생선조림, 나물무침 등에 넣으면 잡내를 줄이고 맛에 깔끔함을 더해줍니다.
한 번 담가 두면 오래 두고 쓸 수 있기 때문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는 재미도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 만든 만큼, 어디에 어떻게 넣어 먹어볼지 하나씩 시도해보는 과정도 제법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