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무속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TV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유튜브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무속인을 다루는 콘텐츠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저 역시 딸 셋을 키우는 40대 아빠로서 아이들의 미래나 진로에 대해 고민이 깊어질 때면 가끔 ‘사주’나 ‘운명’ 같은 단어에 귀가 솔깃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무속인을 찾아갈 용기는 없지만, 마음 한편에 막연한 궁금증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생각의 흐름 속에서 문득 ‘오늘의 운세’는 과연 무속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의 운세’를 심각한 무속 행위라기보다는 가벼운 재미, 이를테면 서양의 별자리 운세나 타로카드 점처럼 일종의 오락거리로 여겨왔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무심코 확인하고 “오늘은 사람 조심하라네”라며 피식 웃고 넘기는, 그 정도의 의미 아니었을까요?

 

신문 귀퉁이 단골손님, 오늘의 운세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종이 신문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창구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매일 아침 신문을 펼쳐 들고 정치면부터 사회면까지 꼼꼼히 읽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저는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신문을 받아 들면 항상 맨 뒷장부터 찾았습니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오늘의 운세’ 코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쥐띠부터 돼지띠까지, 그날의 길흉화복을 짧은 문장으로 요약해놓은 그 작은 공간은 어린 저에게는 나름의 신비로운 세계였습니다.

어느덧 저도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딸들을 둔 아빠가 되었고, 종이 신문을 본 기억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세상 모든 소식을 접하는 시대이니, 지하철 가판대에서 신문을 찾아보기조차 힘듭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오늘의 운세’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온라인 신문 한쪽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습관처럼 방문하는 곳은 서울신문 오늘의 운세 페이지입니다. 특정 신문의 운세가 더 용하다거나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저 오랜 시간 익숙하게 봐왔던 이름이고, 깔끔하게 정리된 구성이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해당 페이지에 접속하면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라는 제목과 함께 날짜별로 각 띠의 운세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81년생 닭띠: 과도한 목표는 심신을 지치게 하니 오늘은 여유를 가지세요.” 같은 조언을 보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빡빡한 프로젝트 일정에 치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날은 운세의 조언을 핑계 삼아 “오늘은 칼퇴근해서 아이들과 맛있는 저녁이나 먹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이처럼 오늘의 운세는 제게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위안이자, 일상의 방향을 잡아주는 소소한 나침반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운세는 통계인가, 미신인가?

 

‘오늘의 운세’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흔히 운세는 명리학이나 사주팔자를 기반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바탕으로 개인의 운명을 분석하는 학문인데, 이를 단순화하여 띠별로 하루의 운세를 풀이하는 것이 바로 신문 운세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100%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에 같은 닭띠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하루를 보낼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운세가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는 운세의 내용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조언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신중을 기하라”, “금전 거래는 피하는 것이 좋다”, “건강에 유의하라” 같은 말들은 사실 어느 날에나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격언에 가깝습니다.

결국 오늘의 운세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한다면 미신에 가까워지겠지만, 하루를 유쾌하게 시작하는 자기 암시의 도구나 지혜로운 조언으로 받아들인다면 일상에 활력을 주는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맞벌이를 하며 아이들 교육 문제로 늘 머리가 복잡한 부모에게는 가끔 이런 비과학적인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집값 걱정, 아이들 사춘기 걱정 등 현실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오늘은 귀인을 만나니 어려움이 해결될 것입니다”라는 운세 한 줄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물론 그 귀인이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고, 아이들의 웃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말입니다. 운동을 해도 좀처럼 빠지지 않는 뱃살처럼 인생의 문제들도 쉽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이런 작은 믿음 하나가 또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